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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의 침묵 – 낯선 이들과 나누는 조용한 연대감

by 갈지로 2025.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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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으로 나누는 연대,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무대

지하철은 늘 조용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말 없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전동차가 쇳바퀴를 끌고 가며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소음, 끼익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가끔 삐걱대는 누군가의 가방 지퍼.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존재 자체로 공간을 채운다

 

이런 침묵은 어떤 날엔 무겁고, 어떤 날엔 위로가 된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침묵 속에서 함께 있는 건, 단지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만들어진, 묘한 연대일까.

복잡한 지하철
복잡한 지하철

아무 말 없는 동행자들

출근길 7호선, 꽉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늘 같은 칸, 같은 자리 근처를 지킨다. 어제도 봤던 얼굴이 있고, 낯선 표정이 있고, 잠에서 덜 깬 눈빛이 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완전히 고립된 느낌은 아니다.

누군가가 넘어질 듯 비틀거리면 옆 사람이 조용히 손을 뻗는다. 누가 물건을 떨어뜨리면 말없이 주워 건넨다. 서로를 똑바로 보진 않지만, 이상하게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 말은 없지만, 존재를 감지한다. 그건 때때로 말보다 더 깊은 연결이다.

말이 사라진 공간에서 피어나는 감정

우리는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시선 하나, 숨소리 하나, 작은 움직임 하나가 누군가의 피로를 말해준다. 어떤 날은 뒷자리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모두가 들었다. 그리고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말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은 공감이 생겼다.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연결된다

어쩌면 지하철은 도시에서 가장 이상한 공동체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모른다. 이름도, 직업도, 성격도. 하지만 우리는 함께 같은 공간을 나누며 움직인다. 같은 노선을 따라, 같은 속도로, 같은 풍경을 지나친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도 정든다. 건너편 앉은 노인을 보면 ‘어제도 저분 봤었지’ 하는 마음이 든다. 어깨 너머로 책을 읽는 청년의 손가락을 보며 그가 어떤 삶을 사는지 상상하게 된다. 이름 모를 그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히 무언가 흐르고 있다.

도시의 침묵은 차가운 것만은 아니다

침묵은 흔히 외로움이나 냉소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지하철 속 침묵은 다르다. 차가운 듯 따뜻하고, 냉정한 듯 부드럽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예의. 하지만 동시에, 지켜보고 있다는 조용한 관심.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듣는다. 손짓 없이도, 느낀다. 도시는 바쁘고 거칠지만, 그 안에는 아주 정중한 감정의 흐름이 있다. 그걸 알고 나면, 이 침묵이 더는 무섭지 않다.

끝나지 않는 침묵 속의 안심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하나둘 내린다. 떠나는 발걸음도 조용하고, 그 자리를 메우는 사람들도 조용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쌓이고 쌓여, 어떤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매일 반복되는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간다.

나는 오늘도 지하철 안에서 침묵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묘한 안심을 느꼈다. 말이 없어서 편하고, 말이 없어서 더 가까워지는 순간. 우리 사이엔 이름 대신, 시간과 공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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