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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과삶2

노약자석 - 그 자리에 처음 앉았을 때 노약자석에 처음 앉던 순간의 낯섦지하철 노약자석.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는 내게 ‘금기’였다. 비어 있어도, 발이 아파도, 허리가 욱신거려도 나는 절대로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앉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는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비워둬야 하는 곳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비가 내리던 늦봄의 오후.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던 길이었다. 발목은 아침부터 욱신거렸고, 오른쪽 무릎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조용히 울렸다. 평소 같았으면 참고 일반석에 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노약자석 쪽 좌석 하나가 조용히 비어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멈췄다. 머뭇거렸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다.그리고 나는 앉았다.. 2025. 8. 26.
비어 있는 자리는 늘 비어 있지 않았다. 빈자리가 남긴 시간의 흔적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노약자석이 비어 있길래 앉았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형식적으로, 물리적으로, 실제로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처음 앉던 날 그 빈자리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을 느꼈다. 비어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비어 있지 않은 자리. 그곳은 누군가의 숨결이, 누군가의 쉼표가, 누군가의 마지막이 스며든 곳이었다.빈 자리에 남은 것들처음으로 노약자석에 앉고 나서야 나는 그 자리가 단순한 ‘의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등받이에 살짝 눌린 형상, 천 위에 묻은 시간의 먼지, 때로는 묻어나 있는 약 냄새. 그 자리는 그저 누군가 앉았다가 떠난 자리가 아니었다. 그 자리를 스쳐간 수많은 사람의 인생이 보이지 않게 눌어 있었다.지하철은 달리고, 사람들.. 2025.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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