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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흐르는 풍경, 오늘은 왜 이리 아름답지 왜일까, 오늘은 창밖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강창에서 임당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객차 유리창 너머 풍경이 오늘은 유독 선명해 보였다.하늘은 맑고, 구름은 얇은 솜처럼 가볍게 떠 있었고, 도로 위로는 출근길의 분주함이 빠져 나른하고 평화로운 정오의 공기가 그림처럼 퍼져 있었다.암을 겪기 전엔 몰랐던 아름다움병을 진단받기 전, 나는 늘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창밖을 지나쳤다. 풍경은 배경음악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고,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목적지뿐이었다.하지만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멈출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특히 ‘창밖’이라는 이 좁은 세계 안에서.창 밖 풍경에 가슴이 미어지는 날어느 날은 창밖의 나무 한 그루에 눈이 멎는다. 잎이 흔들리는 작은 떨림이 내 몸속의 불안과 묘하.. 2025. 9. 13.
지하철의 노약자석, 이제는 내 자리 지하철 노약자석, 청춘에서 노년으로 이어진 의자한때 나는 노약자석 앞에 서는 것조차 어색했다. 빈자리가 나를 유혹해도 그곳에 앉는 건 예의가 아니라 여겼다.그 자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몫이었다. 늙은 어르신, 지팡이를 짚은 사람, 혹은 임산부.하지만 이제, 그 빈자리에 내 몸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처음 그 자리에 앉았던 날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어지럼증이 심했던 날, 나는 결국 노약자석에 주저앉았다.주변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속으로 물어보는 것 같았다. “젊은 사람이 왜 저기 앉아?”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깨달았다. 그 자리는 배려의 공간이자 필요의 공간이라는 것을.노약자석은 ‘약함을 수용하는 용기’의 자리다노약자석에 앉는다는 건 약자라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약함을 드러낸다는 건 어.. 2025. 9. 12.
암 치료의 여정 -버텨낸 하루의 증명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강창역 플랫폼에 다시 섰다. 진료를 마친 오후, 몸은 천근처럼 무겁다. 그러나 마음 어딘가에는 묵직한 만족감이 말없이 눌러앉아 있다.오늘도 다녀왔다는 사실, 다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작지만 분명한 승리다.나를 증명해주는 건 결과지가 아니라 이 귀갓길이다의사 앞에서 받은 혈액검사 결과지보다 지금 이 열차 안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명확하게 오늘을 버텨냈다는 걸 증명한다.숫자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몸에 스민 피로감, 앉자마자 느껴지는 안도의 한숨, 손끝의 묵직한 탈력감은 분명히 ‘살아낸 자의 감각’이다.지친 몸을 맡긴 객차 안, 이곳이 내 쉼터다사람들 틈에 조용히 앉아 나는 등을 기댄다. 마치 객차 전체가 내 몸을 감싸주는 듯하다... 2025. 9. 4.
암 치료 여정-내가 오늘도 살아 있다는 증거들 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임당역에서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 나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쉰다. 그건 피곤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나만의 방식이다.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그 단순한 동작이 오늘도 나를 이 세계에 붙들어 놓는다. 숨결 하나로 확인하는 생존병을 앓고 나니 숨쉬는 일조차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항암 치료가 끝난 날도, 그 후 며칠 동안 폐가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가끔은 침대에 누운 채 ‘지금 숨 쉬고 있나?’라는 생각에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하지만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내 숨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미소 짓는다. ‘그래, 오늘도 살아 있다.’소리와 소음 사이의 자각지하철 안은 시끄럽다. 전동차의 덜컹거리는 소리, 지직거리는 안내방송, 핸드폰.. 2025. 9. 3.
암 치료 여정-다시 ‘강창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 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다시 ‘강창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지하철 문이 ‘강창역입니다’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열릴 때,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오늘도 도착했다.” 임당에서 강창까지 그 구간은 나에게 하루의 생존곡선이었다.어떤 날은 숨이 가빴고, 어떤 날은 생각이 무겁고, 또 어떤 날은 가슴이 멍하니 무감각했다. 그 모든 감정을 통과해 ‘강창역’이라는 간판 앞에 선 순간, 나는 확신한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도착했다’는 말은 단순한 이동을 뜻하지 않는다사람들은 말한다. “지하철 타고 몇 정거장이면 도착한다”고. 하지만 나에게 도착은 단순히 장소에 이른다는 의미가 아니다.그건 오늘 하루 몸이 허락한 거리였다는 뜻이고, 마음이 허락한 출발이었다는 의미다.어떤 날은 몸이 말을 .. 2025. 9. 3.
암 치료 여정-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임당역에서 강창역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나는 요즘 지하철 좌석에 앉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이른 아침, 임당역에서 출발해 강창역까지 가는 길....여러 정거장을 지나치면서 어쩐지 좌석 하나에 앉게 되면 오늘은 살아 숨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어제는 한 노년의 남자와 오늘은 한 학생과 그리고 또 다른 날은 말 없는 중년 부부와 내 몸의 몇 센티를 나란히 했다.그들은 나를 모른다, 나는 그들을 안다그들은 내가 병을 앓고 있다는 걸 모른다. 완전관해를 꿈꾸며 이 지하철에 오르는 이유도, 며칠째 잠을 못 잔 얼굴이라는 것도, 어쩌면 오늘 아플까 봐 긴장하고 있다는 것도.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의 피곤한 눈동자에서 그들도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그 누구도 가볍게 이 도시를 지나가는 사람은 .. 2025. 9. 2.
암 치료 여정-지하철 창에 비친 얼굴, 낯선 내 모습 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지하철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날 때면 창이 거울이 된다. 나는 종종 그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무의식적으로, 습관처럼. 그러나 그 순간마다 나는 짧은 충격을 받는다.“저게… 나인가?” “이게… 지금의 내 얼굴인가?”병에 걸리기 전, 나는 종종 ‘자신감’이라는 걸 얼굴 위에 걸치고 살았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복장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피부는 조금 더 거칠어졌고, 눈 밑의 그늘은 지워지지 않는다.치료가 바꿔놓은 것들항암 치료는 내 몸을 정직하게 바꿨다. 머리카락, 체중, 눈빛, 그리고 ‘표정’이라는 것을 더 이상 조율하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지금의 내 얼굴을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야 하는 중이다.창에 비친 얼굴은 내가 아는 누군가 같기도 하고.. 2025. 9. 2.
노약자석-이 자리에서, 나는 더 천천히 살아간다. 노약자석-이 자리에서 배운 것, 느리게 사는 법지하철의 속도는 언제나 빠르다. 도시는 빠르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그 속도를 쫓느라 자신의 숨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살아간다.하지만 노약자석에 앉은 나는 그 흐름에서 잠시 벗어난다. 나는 이 자리에서 비로소 천천히 살아간다.이곳은 멈춤의 자리다빠르게 움직이던 나날 속에서도 지하철에 앉는 순간, 나는 비로소 쉰다.특히 노약자석은 ‘쉼’이 허락된 유일한 구역 같다. 양보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그 자체로 인정받는 정지의 공간.나는 이 자리에서 멈춘다. 몸도, 생각도, 시간도. 그리고 그 멈춤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천천히 살아간다는 건 늦어진다는 게 아니다예전엔 무조건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뛰어야 하고, 달려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야만 가치.. 2025. 9. 1.
노약자석의 노인-나는 그 노인을 바라보던 청년이었다. 노약자석의 노인, 그리고 그를 바라보던 나의 젊은 날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대학 시절, 아침 8시쯤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던 어느 날. 복잡한 객차 속,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구부정한 어깨의 노인이 있었다.나는 그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저렇게 늙지 않을 거야.” “나는 나이 들어도 더 씩씩할 거야.” “나는 저 자리에 앉지 않을 거야.”그때 나는 그 노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청년의 눈으로 본 노인그 시절의 나는 세상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줄 알았다. 뒤로 물러난다는 건 패배였고, 느려지는 건 게으름이었다.노인의 구부러진 허리, 무표정한 얼굴, 움직이지 않는 손. 그 모든 것이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그는 나의 미래가 아니라 그저 ‘과거의 잔상’처럼 보였던..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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