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의 여정 – 임당역에서 강창역까지
임당역, 아직 시작되지 않은 하루의 입구
이른 아침, 임당역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묵직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루를 시작하는 평범한 장소일 테지만 나에겐 이곳이 오늘을 살아낼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감정의 문턱이 된다.
아직 햇살이 지하로 닿지 않은 시간. 회색빛 벽, 눅눅한 공기, 그리고 아직 말이 오가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 모든 게 느리고 조용하다. 마치 나의 폐처럼, 깊게 들이켜야만 겨우 살아 있는 것처럼.
“완전관해”라는 말의 무게
의사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건 마치 먼 별자리 같았다. 너무 멀고, 너무 빛나서 가까이 갈수록 눈이 아픈 그런 말.
완전관해. 모든 병변이 사라지고 당장은 이상 소견이 없다는 그 단어는 희망 같기도, 허상 같기도 했다.
나는 그 단어를 손에 쥐려 한다. 하지만 이른 아침 임당역의 공기는 그 단어가 아직 나와 무관하다는 걸 조용히, 그러나 냉정하게 알려준다.
승강장, 그리고 망설임의 시작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그 아래는 또 하나의 세계다. 모두가 제 갈 길을 재촉하는 아침. 그러나 나는 두어 걸음 뒤처진 채 멈춰 선다.
아직 올라오지 않은 열차를 기다리며 나는 생각한다. 오늘은 버틸 수 있을까. 오늘은 통증이 덜할까. 오늘은 다시… 희망을 믿을 수 있을까.
한 정거장, 두 정거장. 그 짧은 거리 속에서도 마음은 수십 번 왔다 갔다 한다. 생존에 대한 기대와 의심 사이를, 끊임없이.
나만의 의식처럼 반복되는 출근길
나는 회사를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이 시간, 매일 이곳으로 향한다.
지하철을 타는 이 여정은 어쩌면 치료보다 더 치열한 의식이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시간.
남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유튜브를 보고, 뉴스에 빠져 있지만 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오로지 내 호흡에 집중한다.
오늘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선명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강창까지 갑니다”
열차가 들어온다. 경쾌하지 않은 브레이크 소리, 삐걱대는 문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익숙한 안내 방송.
나는 사람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몸을 밀어넣고 창가 근처에 선다. 앉을 수 있는 날도, 끝까지 서서 가야 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오늘도 강창역으로 향한다는 사실이다. 완전관해라는 낯선 단어가 아직도 저 멀리 있다 해도, 나는 오늘도 그 방향으로 몸을 실었다.
임당역은 언제나 시작점이었다
이곳은 내게 어떤 선언 같은 곳이다. 몸이 아파도, 마음이 무너져도 나는 이곳에 다시 선다. 다시 시작한다.
누구에게는 별 의미 없는 작은 역의 이름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포기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담긴 출발점이다.
임당역에서 열차에 오르는 나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다시 한 번 믿어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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