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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관해를위하여2

완전관해를 꿈꾸며: 다시 병원 문을 두드리다 완전관해를 꿈꾸는 환자의 또 다른 여정암 치료를 마쳤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다.나는 생존자다. 의사에게 ‘관해’라는 말을 들었고, 사람들은 “이제 괜찮겠네”라고 말했지만 내 안에서는 계속해서 질문이 일었다.“정말 괜찮은 걸까?”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이대로 멈춰 있어도 되는 걸까?”완전관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완전관해’라는 말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공포였다. 그 단어는 멀게 느껴졌고, 나는 여전히 불안한 체온 속에 있었다.그래서 결심했다. 치료 이후의 삶도 내가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단지 재발을 기다리며 지낼 수는 없었다.무너지지 않기 위해, 다시 요양병원을 찾다나는 검색을 시작했고, 다시 병원이라는 두 글자 앞에 섰다. 하지만 .. 2025. 9. 15.
지하철의 노약자석, 이제는 내 자리 지하철 노약자석, 청춘에서 노년으로 이어진 의자한때 나는 노약자석 앞에 서는 것조차 어색했다. 빈자리가 나를 유혹해도 그곳에 앉는 건 예의가 아니라 여겼다.그 자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몫이었다. 늙은 어르신, 지팡이를 짚은 사람, 혹은 임산부.하지만 이제, 그 빈자리에 내 몸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처음 그 자리에 앉았던 날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어지럼증이 심했던 날, 나는 결국 노약자석에 주저앉았다.주변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속으로 물어보는 것 같았다. “젊은 사람이 왜 저기 앉아?”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깨달았다. 그 자리는 배려의 공간이자 필요의 공간이라는 것을.노약자석은 ‘약함을 수용하는 용기’의 자리다노약자석에 앉는다는 건 약자라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약함을 드러낸다는 건 어.. 202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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