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약자석, 청춘에서 노년으로 이어진 의자
한때 나는 노약자석 앞에 서는 것조차 어색했다. 빈자리가 나를 유혹해도 그곳에 앉는 건 예의가 아니라 여겼다.
그 자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몫이었다. 늙은 어르신, 지팡이를 짚은 사람, 혹은 임산부.
하지만 이제, 그 빈자리에 내 몸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
처음 그 자리에 앉았던 날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어지럼증이 심했던 날, 나는 결국 노약자석에 주저앉았다.
주변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속으로 물어보는 것 같았다. “젊은 사람이 왜 저기 앉아?”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깨달았다. 그 자리는 배려의 공간이자 필요의 공간이라는 것을.
노약자석은 ‘약함을 수용하는 용기’의 자리다
노약자석에 앉는다는 건 약자라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약함을 드러낸다는 건 어떤 용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숨을 고르고, 두통을 식히며 ‘다시 회복하기 위한 시간’을 가진다.
그건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건 인간다운 회복의 권리다.
지하철 안, 나도 보호받고 싶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약해지면 작은 배려에도 눈물이 핑 돈다. 한 번은 내 앞에 앉은 노인이 내 표정을 보고 자기 자리를 양보했다.
“젊은 사람도 아플 수 있지.” 그 말은 내 안에서 무너져 있던 뭔가를 다시 세워줬다.
그날 나는 노약자석이 단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자리’라는 걸 배웠다.
이제는 거리낌 없이 앉는다
처음엔 눈치를 봤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지금 치료 중이고, 그 자리가 내게 꼭 필요하다.
그 대신,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건 순환이다. 내가 받았던 배려를 다시 되돌리는 방식이다.
노약자석, 나를 받아들인 첫 번째 공간
완전관해를 기다리는 지금, 나는 더 이상 강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필요하면 손잡이를 잡고, 더 필요하면 앉는다.
내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 해도 상관없다.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조건일 뿐이다.
지하철의 노약자석. 이제는 그 공간이 내 하루의 휴식처가 되었고, 내 회복의 작은 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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