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관해를 꿈꾸는 환자의 또 다른 여정
암 치료를 마쳤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생존자다. 의사에게 ‘관해’라는 말을 들었고, 사람들은 “이제 괜찮겠네”라고 말했지만 내 안에서는 계속해서 질문이 일었다.
“정말 괜찮은 걸까?”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이대로 멈춰 있어도 되는 걸까?”
완전관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완전관해’라는 말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공포였다. 그 단어는 멀게 느껴졌고, 나는 여전히 불안한 체온 속에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치료 이후의 삶도 내가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단지 재발을 기다리며 지낼 수는 없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다시 요양병원을 찾다
나는 검색을 시작했고, 다시 병원이라는 두 글자 앞에 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치료가 아니라 내 ‘면역’을 위한 병원. 신체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집에서 가까운 ‘요양병원’이었다.
왜 요양병원이었는가
서울 도심에 위치했다는 점은 내게 중요했다. 암 치료는 정신적으로도 고립감을 동반하기에 바깥과 단절되지 않는 입지가 필요했다.
의외로 가까웠고, 한 번 방문해보니 그곳은 병원이면서도 병원 같지 않았다.
의료진의 설명은 따뜻했고, 무언가 막연했던 내 불안을 하나씩 해체해주는 느낌이었다.
면역을 다시 시작하는 장소
나는 이제 면역력을 재건하는 정확하고 체계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몸은 이미 많은 약물과 치료로 지쳐 있었고, 복원되지 않은 채로 버티고 있었다.
요양병원에서는 싸이모신 알파원, 미슬토 주사(압노바비스쿰에프), 고용량 비타민C, 글루타치온 요법 등을 정확한 프로토콜에 따라 제공하고 있었다.
무언가 의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 몸을 정말 사람처럼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싸운다’가 아니라, ‘다시 만든다’는 느낌
나는 그동안 암과 싸우기만 했다. 죽지 않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요양병원에서는 ‘싸움’이 아니라 ‘회복’을 말했다. 이제는 무너지지 않기 위한 차가운 각오가 아니라,
천천히 다시 쌓아 올리는 따뜻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완전관해는 멀리 있는 목표지만 내 손으로 끌어당기고 싶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이 순간, 나를 다시 돌보는 일이라고 믿는다.
요양병원은 나의 이 결심에 조용히 함께해 주는 공간이다. 조급하지 않게, 그러나 명확하게.
나는 오늘도 면역이라는 뿌리를 다시 심기 위해 도심 속 병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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