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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시작은 밀려드는 무표정에서 시작된다

by 갈지로 2025.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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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이 쌓여 하루를 여는 지하철 풍경

하루의 시작은 밀려드는 무표정에서 시작된다

아침 7시 42분. 지하철 2호선, 환승역을 통과하는 시간. 문이 열리는 순간, 사람들은 마치 훈련된 무리처럼 일제히 밀려든다. 한 줄로 늘어선 대기열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얼굴들엔 어떤 감정도 없다.

 

무표정. 그게 이 도시의 아침이다. 출근길의 수많은 표정들은 전부 지워져 있다. 화남도, 기쁨도, 당혹도 없다. 다만, ‘아무 표정 없음’만이 반복되는 시간대에 자리 잡고 있다.

 

왜 우리는 무표정을 선택하는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굳은 얼굴, 반쯤 감긴 눈, 닫힌 입.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자신 사이에 벽을 세운다. 혹은 음악 속으로 피신하듯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는다.

이 무표정은 그냥 ‘졸림’이나 ‘피곤함’이 아니다. 그건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감정을 꺼내 놓기엔 세상이 너무 차갑고, 드러내기엔 너무 취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아침, 얼굴에서 표정을 지운다. 그건 포기라기보단, 일종의 방어다.

무표정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다

나는 지하철에서 무표정한 사람들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그 안에는 정말 아무 감정도 없는 걸까? 오히려, 너무 많은 감정이 있어서 밖으로 꺼내면 터져버릴까 봐 애써 눌러 놓은 게 아닐까.

어제 울었을 수도 있고, 밤새 뒤척였을 수도 있으며,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을 수십 번 접고 겨우 몸을 일으킨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눈빛에 담기지 않는다. 표정을 감추고, 어깨를 웅크리고, 몸을 작게 만들어 세상과 충돌하지 않으려 애쓴다.

누군가의 하루는 이미 지쳐 있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칸 안은 다시 침묵에 잠긴다. 그 침묵 속엔 피로가 흘러다닌다. 단순한 육체의 피로가 아니라, 감정의 피로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열차 안에 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쳐 있는 상태로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밤새 쌓인 미해결의 감정들, 해결되지 않은 관계, 밀려 있는 업무, 대출 이자, 통장 잔고. 그 모든 것이 어깨를 누른 채,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앉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다시 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하철을 탄다.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칸에, 똑같은 자리 근처에 선다. 매일 같이 타고 있지만, 그날의 감정은 또 다르다. 기대도 없고, 설렘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고 있다. 그건 포기한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무표정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건 ‘오늘도 나는 내 감정을 누르고 살아낸다’는 가장 고된 생존의 증거다.

그 표정을 이해하는 연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지하철에서 무표정한 사람들을 보면, 그게 낯설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나였다. 나 역시 그 얼굴로 하루를 시작했고, 그들처럼 아무 말 없이 오늘을 견디기 위해 탄 사람이었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얼굴 알아요. 나도 그래요.” 하지만 그런 말조차 부담이 될까 봐 꺼내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싶지만, 침묵이 더 안전한 방식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오늘도, 탄다

오늘도 나는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무표정한 사람들 틈에 섞여, 나도 얼굴을 비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많은 생각이 있다. 무거운 마음도 있고, 작게 남은 희망도 있다. 그건 누구나 그렇다.

하루의 시작은 그렇게, 밀려드는 무표정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말하지 않은 감정들이 흐르고 있다. 그 감정들이 우리를 하루 더 살아가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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