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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잠시 쉬었다 가세요.

노약자석의 노인-나는 그 노인을 바라보던 청년이었다.

by 갈지로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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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석의 노인, 그리고 그를 바라보던 나의 젊은 날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대학 시절, 아침 8시쯤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던 어느 날. 복잡한 객차 속,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구부정한 어깨의 노인이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저렇게 늙지 않을 거야.” “나는 나이 들어도 더 씩씩할 거야.” “나는 저 자리에 앉지 않을 거야.”

그때 나는 그 노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노약자석의 노인
노약자석의 노인

청년의 눈으로 본 노인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줄 알았다. 뒤로 물러난다는 건 패배였고, 느려지는 건 게으름이었다.

노인의 구부러진 허리, 무표정한 얼굴, 움직이지 않는 손. 그 모든 것이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는 나의 미래가 아니라 그저 ‘과거의 잔상’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노인이 나였다는 사실

세월은 참 조용히 흘렀다. 그리고 빠르게, 어느새 나는 그때 그 노인의 나이가 되었다.

지하철에 앉아 있다가 문득 거울 같은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본 순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젊은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생각하겠지. “나는 저렇게 늙지 않을 거야.” “나는 저 자리엔 앉지 않을 거야.”

그 마음, 너무도 잘 안다. 왜냐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시간은 언제나 둥글게 돌아온다

우리는 자꾸만 시간이 일직선처럼 흘러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생은 둥글게, 언제나 반복되는 원의 형태로 우리를 데려간다.

내가 바라보던 노인은 어쩌면 지금의 나였고, 지금 나를 바라보는 청년은 언젠가 또 다른 나일 것이다.

그 원의 흐름 안에서 나는 비로소 그때 그 노인의 고요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노인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세상을 등진 게 아니었다. 그저 말이 없었을 뿐이다.

그의 조용함 속엔 말로 하지 못한 시간의 서사들이 숨어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건 단지 피곤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걸어왔다는 의미였다.

이젠 나도 아무 말 없이 앉는다

나는 이제 그때 그 노인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굳이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감정.

지금은 그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그 청년은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또 용감하기도 하다.

나는 그를 응원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언젠가 이 자리의 의미를 알게 되길 조용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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