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약자석 – 침묵 속에 담긴 무게
지하철을 탈 때면 가장 조용한 구역은 언제나 노약자석이다. 그곳엔 유난히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지도 않고, 눈으로 스마트폰을 뒤적이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 말이 없지만, 생각은 누구보다 무겁고 오래 이어진다.
침묵은 이야기의 반대말이 아니다
누군가는 침묵을 무심함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침묵은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태도다.
그들은 이미 할 말을 다 했다. 인생의 긴 시간을 통해 수많은 말과 감정들을 흘려보냈고, 이젠 말이 아닌 생각으로 세상을 대한다.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무게
나는 노약자석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볼 때 묘한 존경심을 느낀다. 특별한 대단함이 아니라, 그들이 가만히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발산하는 생의 무게 때문이다.
그 무게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름진 손, 느린 눈동자, 그리고 손에 꼭 쥐어진 검은 비닐봉투 안의 장바구니.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역사를 대변한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장이었다
지금은 지하철 노약자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들. 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어떤 가족의 중심이었고,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부르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말이 없고 조용하지만 그 안엔, 과거의 시끄러운 시간들이 고요하게 쌓여 있다. 웃음과 다툼, 상실과 희망. 그 모든 것이 그저 침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침묵을 우리는 얼마나 알아보고 있을까
요즘의 지하철은 바쁘고 시끄럽다. 젊은 사람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있고, 귀에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눈은 화면 속 뉴스나 드라마에 빠져 있다.
그 속에서, 노약자석의 침묵은 오히려 더 투명하게 지워진다. 누구도 말 없는 이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말이 없으면, 관심도 줄어든다.
말없이 앉아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존중이다
그들에게 말은 필요 없다. 불필요한 친절도, 억지 미소도 없다. 다만, 그들의 그 조용한 존재감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말이 없는 그들이라고 해서 살아 있는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배려가 아니라, 작은 존중이다.
그 자리에 앉은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그들에게 주어진 조용한 무대
나는 이제 노약자석을 하나의 무대처럼 바라본다. 조명이 없고, 박수도 없지만 그곳에서 펼쳐지는 삶은 그 어떤 연극보다 진실하다.
그들은 말없이 앉아 자신의 인생을 한 장면처럼 펼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대를 지나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박수를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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