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당역에서 강창역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나는 요즘 지하철 좌석에 앉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이른 아침, 임당역에서 출발해 강창역까지 가는 길....여러 정거장을 지나치면서 어쩐지 좌석 하나에 앉게 되면 오늘은 살아 숨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어제는 한 노년의 남자와 오늘은 한 학생과 그리고 또 다른 날은 말 없는 중년 부부와 내 몸의 몇 센티를 나란히 했다.
그들은 나를 모른다, 나는 그들을 안다
그들은 내가 병을 앓고 있다는 걸 모른다. 완전관해를 꿈꾸며 이 지하철에 오르는 이유도, 며칠째 잠을 못 잔 얼굴이라는 것도, 어쩌면 오늘 아플까 봐 긴장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의 피곤한 눈동자에서 그들도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가볍게 이 도시를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짊어진 무게가 있다. 내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말 없는 사연들.
나란히 앉은 사람들의 온도
때로는 무심하게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 무릎이 맞닿거나, 어깨가 닿는다. 옷깃이 스치고, 숨결이 아주 가깝다.
그게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그건 누군가 곁에 있다는 아주 단순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자주 고립된다. 사람 많은 곳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누군가와 말 없이 앉아 있을 땐 조금 덜 외롭다.
말 없는 연대
지하철은 이상하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말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침묵이 어쩌면 가장 깊은 대화일 수도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모르지만 아침이라는 짐, 하루의 무게, 그리고 살아내야 하는 시간을 나눈다.
그렇게 매일 나는 병원 대신, 좌석에서 누군가와 아주 조용한 연대를 맺는다.
잠시 누군가와 연결되는 순간
어느 날, 내 옆에 앉은 여학생이 기침을 한참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가방 속에서 물병을 꺼냈다. 그 아이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말에도 온기가 있었다.
때로는 그런 순간이 하루를 바꾼다. 큰 사건이 아니어도, 잠시 스친 인간의 온기 하나면 ‘그래, 오늘도 괜찮다’고 마음이 말해준다.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들이 하루를 지탱해준다
나는 그들에게 이름도, 사연도 묻지 않는다. 그들도 나에게 그러하듯.
하지만 누군가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버틸 수 있다. 지하철은 그런 기적을 매일 일으킨다.
강창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그들과 헤어지는 순간, 나는 가끔 속으로 인사한다.
“오늘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오늘도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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