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다시 ‘강창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
지하철 문이 ‘강창역입니다’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열릴 때,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오늘도 도착했다.” 임당에서 강창까지 그 구간은 나에게 하루의 생존곡선이었다.
어떤 날은 숨이 가빴고, 어떤 날은 생각이 무겁고, 또 어떤 날은 가슴이 멍하니 무감각했다. 그 모든 감정을 통과해 ‘강창역’이라는 간판 앞에 선 순간, 나는 확신한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
‘도착했다’는 말은 단순한 이동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하철 타고 몇 정거장이면 도착한다”고. 하지만 나에게 도착은 단순히 장소에 이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건 오늘 하루 몸이 허락한 거리였다는 뜻이고, 마음이 허락한 출발이었다는 의미다.
어떤 날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임당역까지도 가기 힘들다. 출발이 늘 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도착했다는 사실은, 오늘은 가능했다는 증명이다.
강창역은 병원이 있는 곳이지만, 희망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창역에서 내리면 바로 병원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붐비는 상점도 없고, 화려한 간판도 없다. 병원 외에는 목적이 없는 듯한 조용한 동네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가장 많은 희망을 봤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수액을 맞고도 웃는 보호자의 얼굴, 차창에 기대어 잠든 노인의 평온함.
이곳은 병이 있는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니다.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루에 한 번, ‘도착할 수 있음’이 주는 감사
강창역을 처음 올 땐 두려움밖에 없었다. 병명도 낯설었고, 병원이라는 공간도 왠지 절망의 색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도착이 주는 감정은 달라졌다. 나는 매일 이곳에 올 수 있다는 사실에 어느 순간부터 ‘감사’를 느끼기 시작했다.
살아 있으니까. 치료가 아직 지속되니까. 그래서 가능하니까.
이 도착이 끝이 아니기를
강창역은 목적지이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 여정의 중간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에서 잠깐 멈추며, 나는 오늘을 다시 정비한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몸이 흩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속으로 바란다. “다음에도, 또 도착할 수 있기를.” “강창이라는 이름이 내게,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 있기를.”
어쩌면 인생은 계속 강창역에 도착하는 일이 아닐까
우리는 날마다 어딘가로 향한다. 그곳이 일이든, 병원이든, 가족이 있는 집이든.
그리고 그곳에 ‘다시’ 도착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살아 있다는 것 아닐까.
나에게는 지금, 그 도착이 ‘강창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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