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임당역에서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 나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쉰다. 그건 피곤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그 단순한 동작이 오늘도 나를 이 세계에 붙들어 놓는다.
숨결 하나로 확인하는 생존
병을 앓고 나니 숨쉬는 일조차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항암 치료가 끝난 날도, 그 후 며칠 동안 폐가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가끔은 침대에 누운 채 ‘지금 숨 쉬고 있나?’라는 생각에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내 숨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미소 짓는다. ‘그래, 오늘도 살아 있다.’
소리와 소음 사이의 자각
지하철 안은 시끄럽다. 전동차의 덜컹거리는 소리, 지직거리는 안내방송, 핸드폰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까지.
예전 같으면 짜증 났을 이 소리들이 지금은 다르게 들린다. 이 세상에 내가 있다는 증거다. 이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이 ‘현재’에 머물게 한다.
귀가 먹먹할 때도 있다. 하지만 소리의 존재는 언제나 내 생존의 신호다.
햇살이 내리는 객차 안
강창으로 향하는 도중, 지하철이 지상 구간을 지날 때면 객차 안으로 햇살이 스며든다.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
그 햇살이 내 무릎에 닿을 때,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햇살은 어떤 약보다 따뜻하다. 그건 몸이 아니라 마음을 데워준다. 병원에서 받을 수 없는 위로이기도 하다.
눈빛이라는 작은 증거
지하철 안에는 눈빛들이 있다. 피곤한 눈, 졸린 눈, 화난 눈, 멍한 눈, 그리고 아주 가끔 나를 쳐다보는 따뜻한 눈빛.
그 눈빛과 마주치면 나는 순간 놀란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도 인지된 것 같아서.
‘투명인간’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많았기에 그 작은 마주침 하나가 내 존재를 재확인시켜준다.
살아 있다는 건 감각이 남아 있다는 것
손끝에 닿는 기둥의 차가움, 의자에 스치는 천의 감촉, 차창 너머 바람의 떨림. 이 모든 것이 나를 일깨운다.
암은 내 몸을 망가뜨렸지만 감각까지 지워버리진 못했다. 나는 여전히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살아 있다는 아주 선명한 증거다.
살아 있다는 건, 이 구간을 다시 타고 있다는 것
임당에서 강창까지. 그 짧은 거리조차도 한때는 꿈같았던 시간이었다.
몸이 더는 허락하지 않으면 이 짧은 거리마저 버거웠다. 하지만 오늘은 타고 있다. 그리고 도착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건 길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용기이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있는 작은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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