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요양병원, 회복의 길에서 선택이 중요한 이유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지쳐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쏟아낸 뒤였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치료’가 아니라 ‘회복’이다.”
그 순간부터 병원을 고르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치료의 정교함만큼, ‘그 공간에서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나는 교통 편리성과 복잡하지 않는 집 근처의 암요양병원을 선택했다. 단지 의료 서비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병원이 있는 ‘위치’와 ‘분위기’가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온도였기 때문이다.
도심 안에 있다는 건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다
경산에 있는 암요양병원은 도심에 있다. 지하철로도 쉽게 닿고, 복잡한 환승 없이도 올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은 내게 ‘가깝고 안전한 곳’이 되었다.
거리가 가깝다는 건 단순히 이동의 문제가 아니다. 지치지 않고 병원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매일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암 치료를 받는 동안 몇 번이나 먼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이미 체력을 반 이상 소모하곤 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출근길 사람들 속에 섞여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마치 ‘여전히 일상 속에 있다’는 위안을 얻었다.
‘고립’이 아닌 ‘연결’ 속의 회복
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암요양병원들은 공기도 좋고 조용하다. 하지만 나에겐 그 조용함이 곧 ‘고립’처럼 느껴졌다.
삶이 멈춘 듯한 공간보다는 삶이 여전히 흘러가는 공간에서 치유받고 싶었다.
도심 한가운데라는 암요양병원의 입지는 교통의 편리성과 내가 사회와 ‘끊기지 않은 사람’임을 확인시켜주는 상징 같았다.
치료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아직도 거리엔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있다.
회복은 환경에서 시작된다
암요양병원에 들어서면 의외로 정적이 흐른다. 크게 붐비지도 않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낮다.
그건 인위적인 고요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는 공간의 리듬이었다.
진료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의지가 더 많이 담겨 있었다.
그 분위기가 좋았다. 고통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향해 버티고 있다는 ‘의식’이 공간에 퍼져 있었다.
병원 같지 않은 병원
대부분의 암요양병원은 딱히 화려하지 않다. 로비가 넓지도 않고, 특별한 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과잉’이 없었다.
너무 환자 중심이 아닌 것 같은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오히려 그게 나를 사람으로 대하는 느낌을 주었다.
여기서는 ‘환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의사와의 상담 시간에도, 간호사와 주사 맞는 시간에도, 나는 ‘통제받는다’는 느낌보다 ‘이해받는다’는 인상을 더 많이 받았다.
이 공간이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
나는 지금도 매주 병원을 찾는다. 주사를 맞고, 비타민C 수액을 맞고, 싸이모신과 미슬토 치료를 병행하며 면역력을 다시 쌓아 올리는 중이다.
그리고 그 여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단지 치료제나 기술이 아니다.
병원을 향해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머무는 동안 느끼는 감정,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해 주는 암요양병원은 없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암 종류에 따른 치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 치료 중, 나는 왜 다시 병원을 찾았을까? (0) | 2025.09.18 |
---|---|
완전관해를 꿈꾸며: 다시 병원 문을 두드리다 (0) | 2025.09.15 |
내일도,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기를 (0) | 2025.09.14 |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 오늘은 왜 이리 아름답지 (2) | 2025.09.13 |
지하철의 노약자석, 이제는 내 자리 (0) | 2025.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