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일까, 오늘은 창밖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강창에서 임당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객차 유리창 너머 풍경이 오늘은 유독 선명해 보였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얇은 솜처럼 가볍게 떠 있었고, 도로 위로는 출근길의 분주함이 빠져 나른하고 평화로운 정오의 공기가 그림처럼 퍼져 있었다.
암을 겪기 전엔 몰랐던 아름다움
병을 진단받기 전, 나는 늘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창밖을 지나쳤다. 풍경은 배경음악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고,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목적지뿐이었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멈출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특히 ‘창밖’이라는 이 좁은 세계 안에서.
창 밖 풍경에 가슴이 미어지는 날
어느 날은 창밖의 나무 한 그루에 눈이 멎는다. 잎이 흔들리는 작은 떨림이 내 몸속의 불안과 묘하게 겹쳐진다.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생명을 느낀다. 굳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하지만 분명 가슴이 먹먹해진다.
풍경을 ‘본다’는 건, 삶을 인식하는 일이다
창밖을 보는 것은 단순한 ‘시선의 방향’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인식의 방식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에서 이제 나는 의미를 찾는다.
불쑥 핀 풀꽃 하나에도 눈이 간다. 지붕 위에 앉은 고양이에게도 마음이 머문다. 이런 ‘머묾’이야말로 삶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지하철 풍경은 매일 똑같지만, 내가 다르다
지나가는 장소는 똑같다. 광장, 도로, 학교, 한강변. 하지만 매일 풍경은 다르게 느껴진다. 그건 풍경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힘들게 일어났는지, 진료 결과에 따라 안도했는지, 몸의 컨디션이 어떤지에 따라 풍경의 온도도 변한다.
나는 매일 달라진 시선으로 똑같은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
암 진단 이후, 내 마음속 어딘가엔 항상 ‘혹시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작은 목소리가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창밖의 구름이 너무 아름답고 햇살의 각도가 눈부시며 심지어 낡은 아파트 벽까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감정이 슬프기보다는 감사하다. 마치 세상이 날 위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아름다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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