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강창역 플랫폼에 다시 섰다. 진료를 마친 오후, 몸은 천근처럼 무겁다. 그러나 마음 어딘가에는 묵직한 만족감이 말없이 눌러앉아 있다.
오늘도 다녀왔다는 사실, 다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작지만 분명한 승리다.
나를 증명해주는 건 결과지가 아니라 이 귀갓길이다
의사 앞에서 받은 혈액검사 결과지보다 지금 이 열차 안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명확하게 오늘을 버텨냈다는 걸 증명한다.
숫자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몸에 스민 피로감, 앉자마자 느껴지는 안도의 한숨, 손끝의 묵직한 탈력감은 분명히 ‘살아낸 자의 감각’이다.
지친 몸을 맡긴 객차 안, 이곳이 내 쉼터다
사람들 틈에 조용히 앉아 나는 등을 기댄다. 마치 객차 전체가 내 몸을 감싸주는 듯하다.
버티는 동안 굳어버린 어깨가 풀리고 얼굴의 긴장도 조금씩 느슨해진다. 소음 속에 나만의 정적이 생긴다. 그 속에서 나는 잠시 살아있음을 쉬어간다.
다시 지나는 구간, 그러나 전혀 같은 길은 아니다
임당역에서 강창까지 오는 길과 강창에서 임당으로 돌아가는 길은 같은 노선, 같은 거리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오는 길은 다짐이었고, 가는 길은 증명이다. 나는 다시 돌아가는 중이다. 오늘을 이겨낸 채로.
그 단순한 반복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기꺼이 다시 이 길을 탈 수 있다는 건 아직 이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저 앉아 있다는 기적
사람들은 모른다. 이 좌석에 앉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라는 걸.
나는 그걸 안다. 지난 몇 주간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누워서 하루를 흘려보내던 시절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러니 지금 이 열차 안 좌석 하나가 그 어떤 호사보다 값지다. 나는 여기에 앉아, 살아 있는 사람이다.
잠시 눈을 감고, 오늘을 묻는다
열차가 터널로 진입한다. 불빛이 사라지고 창이 거울이 된다.
나는 다시 나를 마주한다. 오늘 어땠니? 힘들었니? 잘 견뎠니?
그리고 속으로 대답한다. “응, 힘들었지만… 괜찮았어. 오늘도 무사히 살아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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