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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정지선 - 멈춰 선 순간들: 인생의 정류장

by 갈지로 2025.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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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정류장 – 지하철 선로 위에 비친 우리의 순간들

지하철 정지선 - 매일 아침, 나는 서울지하철 2호선을 탄다. 이미 익숙해진 풍경 속에서도 간혹 낯선 감정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아침 8시 42분, 신도림역과 구로디지털단지역 사이 어딘가에서, 열차는 멈춰 섰다. "앞 열차와의 간격 조정을 위해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익숙한 안내 멘트가 흐르고, 열차 안 공기는 잠시 묘한 정적에 잠겼다.

 

사람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이어폰을 낀 채 멍하니 창밖의 어둠을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묘하게 현실 밖으로 떨어져 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이 잠시 멈춰 선 3분이 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볼 기회가 되어주는 것만 같았다.

지하철 정지선지하철 정지선
지하철 정지선

1. 삶은 늘 직진이 아니다

우리는 마치 직선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살아간다. 학교, 입사, 승진, 결혼, 육아, 노후. 그 경로는 정해져 있고, 속도는 남들과 비교된다. 하지만 지하철이 중간에 멈추듯, 인생도 중간에 걸음을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건강 문제, 관계의 갈등, 혹은 스스로조차 설명하지 못할 막막함.

 

하지만 문제는 그 ‘멈춤’ 자체가 아니다. 우리는 그 멈춤을 두려워하고, 초조해하며, 수치스럽게 여긴다. 멈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패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오늘 열차 안에서, 나는 멈춰선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가장 정직한 모습을 본 듯했다. 모두가 잠시 멈춰 있고, 그 사실을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그건 단지 지금 이 지점에서 필요한 휴식이었을 뿐이다.

2. 정차 중이라는 문장 속에서

‘정차 중입니다.’라는 안내음이 흐르면, 대부분은 짜증을 내거나 핸드폰을 꺼내 든다. 하지만 그 문장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당신은 늦은 게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잠시 멈춰야 하는 구간입니다."

 

인생도 그렇다. 때로는 멈춰서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무조건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후회하는 건 멈췄던 순간이 아니라, 그때 충분히 쉬지 못한 시간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정차 구간이 있었을 것이다. 혹은 지금 그곳에 있을 수도 있다. 모두가 당신을 지나치는 것 같고, 당신만이 뒤처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하철은 결국 다시 출발한다. 때로는 더 빠른 열차가 당신을 추월해 가고, 때로는 당신이 다른 열차를 앞지르기도 한다. 중요한 건 ‘당신의 노선’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3. 어둠 속 창문에 비친 얼굴

열차가 어두운 터널 안에 멈춰 설 때, 창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창문에는 나의 얼굴이 비친다. 낯선 군중 속, 그 얼굴 하나를 바라보며 나는 내 삶을 다시 조용히 되새긴다. 오늘 아침, 그 창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결심했다. 그건 거창한 포부가 아니었다. 단지 ‘서둘지 말자’는 다짐. 지금 멈춰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아주 사적인 선언이었다.

4. 그리고 다시 출발

3분 후, 열차는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깨에 기대 잠들었던 청년이 고개를 들고, 건너편 아주머니는 가방을 다시 매만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 막 멈췄던 그 시간은 누군가에게 작은 전환점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삶은 정지선이 없다. 대신, 정차가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질문을 만나고, 마음을 쉬게 하며, 때로는 새로운 방향을 떠올린다. 이 도시의 모든 지하철이 그렇듯, 당신의 인생도 멈춤 끝에 다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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