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밖 바쁜 걸음, 감정을 감춘 도시의 얼굴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온다. 어떤 얼굴 하나 특별하지 않고, 어떤 표정 하나 튀지 않는다. 그들은 조용하고 무표정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모습이 더 눈에 밟힌다. 다들 왜 이렇게 표정이 없을까.
처음엔 그것이 무관심이라 생각했다. 아무 감정도 없고, 타인에게 관심도 없는 얼굴들. 그러나 그 무표정은 무관심이 아니라, 감정을 숨기기 위한 ‘방어막’이었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그들은 얼굴을 지운다.
도시는 표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울 수는 없다. 웃는 것도 부담스럽다. 괜히 눈물이 고이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혼잣말이라도 하다가는 누군가 시선을 흘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얼굴을 지운다. 감정을 덜어낸다. 그리고 그 무표정이 점점 익숙해진다.
이곳에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어색하고, 때론 위험하다. 차라리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 게 더 안전하다. 그래서 우리는 무표정을 선택한다. 그건 ‘없는 척’이지, ‘없는 것’은 아니다.
얼굴 없는 얼굴들
지하철 안 군중의 얼굴은 하나같이 닮아 있다. 이마에선 피곤이 묻어나고, 눈가에는 무감정한 습관이 깃들어 있다. 입꼬리는 처지거나, 꽉 다물어 있다. 그 얼굴들은 꼭 어딘가로부터 도망치듯,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속에서 감정의 흔적을 발견한다. 잠든 척하지만 눈가에 남아 있는 아픔,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춰 무의식적으로 까딱이는 발끝. 그 무표정의 틈 사이로, 삶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새어나온다.
생존의 표정, 혹은 부재의 연기
우리는 무표정을 탓할 수 없다. 그것은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자, 일종의 보호색이다. 너무 감정을 드러내면 부서지기 쉽고, 너무 드러내놓고 아파하면 위로받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없는 얼굴’을 만든다.
누군가 말했듯, 도시의 아침은 모두가 연기하는 무대다. 우리는 출근이라는 역할, 일상이라는 시나리오 속에서 감정을 감춘다. 그 감정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숨는 것이다. 어딘가에는 여전히 살아 있다.
무표정은 없던 감정의 끝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이 있다. 너무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할 때, 눈가에 스치는 작은 주름 하나를 봤다. 그건 피곤함인지 슬픔인지, 혹은 누군가 그리운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그건 ‘감정’이었다.
무표정한 얼굴 안에 있는 감정은 마치 지하수 같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엄청난 양의 감정이 숨어 흐른다. 때론 그것이 터져 나와 어떤 날은 눈물로, 어떤 날은 한숨으로, 또는 아무 말 없는 침묵으로 새어나온다.
나도 그 군중 속 한 사람이다
무표정한 사람들을 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도 그 중 하나라는 것. 지하철에서의 내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창에 비친 내 표정은 웃고 있을까, 무너져 있을까, 아니면 아무 감정도 없는 척하는 중일까.
내 얼굴도 다른 사람에겐 그저 ‘익명의 표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무표정이라는 가면 아래, 무수한 감정을 품고 있다. 살아야 했고, 버텨야 했고, 그래서 웃지 않았다. 그래서 울지 않았다.
도시의 민낯은 곧 우리의 민낯
무표정한 군중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도시가 어떤 감정 상태인지 알 수 있다. 너무 오래 참고 있고, 너무 자주 외면하며, 너무 깊이 눌러두고 있다. 그건 도시의 민낯이자, 우리의 얼굴이다.
지하철은 거울이다. 서로의 얼굴 속에서 나를 보고, 나의 표정 속에서 이 도시를 본다. 무표정은 결코 감정의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감정을 안고 있다는 증거다. 그걸 잊지 않는다면,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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