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현실을 잠시 멈추다 – 이어폰 속 나만의 세계
지하철 문이 닫히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거의 동시에 이어폰을 꺼낸다. 무표정한 얼굴에 꽂힌 하얀 선 또는 무선 이어폰 하나. 그 조용한 장치가 누군가의 감정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외부에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어폰 속은 누군가의 세계다. 그건 단순한 노래 이상의, 말 없는 피난처다.
도시는 시끄럽다. 소음이 넘친다. 경적, 광고음, 안내 방송, 수많은 발소리와 사람의 목소리들. 그 소음 속에서 감정은 금세 낡고 흐려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소리를 만든다. 세상과의 연결을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의 연결을 잇기 위해서.
이어폰을 꽂는 순간, 하나의 문이 닫힌다
나는 지하철에 오르면 늘 이어폰부터 찾는다. 마치 반사처럼. 음악을 틀고, 눈을 감고,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린다. 그 순간, 세상과 나 사이에 얇지만 단단한 장벽이 생긴다. 도시의 소음은 밀려나고, 음악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어폰을 꽂는 행위는 어떤 문을 닫는 행위와 닮아 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의 피로가 흘러나오지 않게 귀를 막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겨우 내 마음의 숨소리를 듣는다.
음악은 감정을 조율하는 도구다
어떤 날은 재즈를 듣고, 어떤 날은 낡은 발라드를 듣는다. 때로는 아무 가사도 없는 클래식이나, 낯선 나라의 언어로 된 노래도 듣는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음악이 내 기분에 맞춰진다는 것. 음악은 내 기분을 들어주거나, 대신 표현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지하철 속 음악은 특별하다. 가만히 앉아 있기 때문에, 더 온전히 들을 수 있다. 창밖 풍경은 흐르고, 노랫말은 가슴에 고인다. 어떤 가사는 정확히 지금 내 상태를 묘사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건 우연이지만, 동시에 위로다.
나만의 세계가 필요할 때
이어폰을 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다들 약간씩 무장해제된 모습이다. 눈가가 부드러워지고, 입술이 조금 풀어진다. 그건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때만 나오는 표정이다. 아무 방해 없는 곳, 오직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음악이 그 세계를 만든다.
내 옆자리 여성이 클래식을 듣고 있는지, 맞은편 남성이 힙합을 듣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 안에 들어가 있다. 겉으론 같은 칸에 있지만, 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른 감정을 지나고 있다. 음악은 분리이자 보호다.
가사 없는 대화
한 번은, 우연히 옆사람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아주 작은 볼륨이었지만 익숙한 노래였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같은 노래를 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없는 연대감이 생겼다. 말이 없었지만, 그건 대화였다.
이어폰 속 음악은 누군가에겐 기도이고, 누군가에겐 고백이며, 누군가에겐 도피다. 도시가 허락하지 않는 감정들을, 음악은 기꺼이 품어준다. 우리는 그 품 속에서 겨우 마음을 정돈한다.
피난처는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다
이어폰 속 세상은 좋지만,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 결국 도착역은 다가오고, 노래는 끝나고, 문은 다시 열린다. 피난처에서 나올 시간이다. 하지만 그 잠깐의 도피 덕분에 우리는 다시 현실을 버틸 힘을 얻는다.
음악은 현실을 잊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 몇 분이 없다면, 오늘 하루도 너무 버거울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음악을 들으며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이어폰을 꽂고 있다. 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의 얼굴이 창문에 비친다. 각자의 이어폰 속에서 어떤 음악이 흐르고 있을까. 그 음악이 오늘 그들을 어떻게 지켜줬을까.
어쩌면 지하철이 도시를 움직인다면, 음악은 마음을 움직이는 전차일지 모른다. 모두가 떠밀리듯 살아가는 이곳에서,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도구.
오늘 당신의 이어폰 속엔 무엇이 흐르고 있는가. 그 음악이 당신을 지켜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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