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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잠시 쉬었다 가세요.

노약자석-앉아 있어도 불편한 자리

by 갈지로 2025.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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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앉았는데도 쉬어지지 않는 자리

노약자석에 앉아 있다는 건 편안함 속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의미다. 몸은 분명히 앉기를 원한다. 무릎도, 허리도, 이젠 오래 서 있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 자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정신적 권한을 나는 여전히 얻지 못했다.

노약자석
노약자석

처음으로 '내가 앉아도 되는 자리'라는 걸 알았을 때

어느 날, 병원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 가방은 어깨에 묵직했고, 다리는 약간 휘청거렸다. 노약자석 하나가 비어 있었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몸은 편안함을 느꼈지만 시선은 자연스럽게 바닥을 향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할까봐.

내가 앉아 있어도 되는 자리가 되었는데도 왜 이리 눈치가 보였을까.

내가 앉아 있으면, 누가 나를 노약자로 본다

노약자석에 앉는 순간 주변의 시선이 바뀌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아, 저 사람은 이제 그 나이구나.” “몸이 많이 불편한가 보네.” 그런 생각을 누가 할지 모른다는 피로한 상상을 해버린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감시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나는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이 자리의 불편함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인식에서 온다

노약자석의 불편함은 외부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아직 젊다’고 믿고 싶은 그 마음과, ‘이젠 아니다’라는 현실 사이의 충돌 때문이다.

마음은 여전히 일반석에서 버티고 싶어 한다. 허리는 피곤하고 다리는 아파도 ‘괜찮다’고, ‘아직은 젊다’고 자꾸 속인다.

하지만 몸은 더는 거짓말을 못 한다.

양보하던 자리에서 양보받는 자리로

한때는 내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던 사람이었다. 지팡이를 든 노인이 타면 본능처럼 벌떡 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자리에 앉으신 노인에게 미소를 보이며 “편히 앉으세요”라고 했던 나. 이제는 그 자리에 앉아 누군가가 양보해줄까 살짝 기대하는 입장이 되었다.

역할이 바뀐다는 건 이렇게 감정도 따라 바뀌는 일이었다.

노약자석의 진짜 무게

노약자석은 그저 앉는 자리 이상이다. 그곳에는 세월이 앉아 있다. 마음의 균형이 무너질 때, 처음으로 ‘나는 늙었다’는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자리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앉은 순간, 나도 모르게 인생의 어떤 챕터가 넘어갔음을 느낀다.

‘이제는 버티는 대신 기대도 괜찮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 자리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자리를 조금씩 익숙하게 만드는 법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 자리에 익숙해졌다. 예전처럼 움츠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 법을 배워간다.

내가 먼저 시선을 떨구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약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그저 지금 잠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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