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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 여정-지하철 창에 비친 얼굴, 낯선 내 모습 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지하철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날 때면 창이 거울이 된다. 나는 종종 그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무의식적으로, 습관처럼. 그러나 그 순간마다 나는 짧은 충격을 받는다.“저게… 나인가?” “이게… 지금의 내 얼굴인가?”병에 걸리기 전, 나는 종종 ‘자신감’이라는 걸 얼굴 위에 걸치고 살았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복장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피부는 조금 더 거칠어졌고, 눈 밑의 그늘은 지워지지 않는다.치료가 바꿔놓은 것들항암 치료는 내 몸을 정직하게 바꿨다. 머리카락, 체중, 눈빛, 그리고 ‘표정’이라는 것을 더 이상 조율하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지금의 내 얼굴을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야 하는 중이다.창에 비친 얼굴은 내가 아는 누군가 같기도 하고.. 2025. 9. 2.
노약자석-이 자리에서, 나는 더 천천히 살아간다. 노약자석-이 자리에서 배운 것, 느리게 사는 법지하철의 속도는 언제나 빠르다. 도시는 빠르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그 속도를 쫓느라 자신의 숨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살아간다.하지만 노약자석에 앉은 나는 그 흐름에서 잠시 벗어난다. 나는 이 자리에서 비로소 천천히 살아간다.이곳은 멈춤의 자리다빠르게 움직이던 나날 속에서도 지하철에 앉는 순간, 나는 비로소 쉰다.특히 노약자석은 ‘쉼’이 허락된 유일한 구역 같다. 양보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그 자체로 인정받는 정지의 공간.나는 이 자리에서 멈춘다. 몸도, 생각도, 시간도. 그리고 그 멈춤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천천히 살아간다는 건 늦어진다는 게 아니다예전엔 무조건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뛰어야 하고, 달려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야만 가치.. 2025. 9. 1.
노약자석의 노인-나는 그 노인을 바라보던 청년이었다. 노약자석의 노인, 그리고 그를 바라보던 나의 젊은 날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대학 시절, 아침 8시쯤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던 어느 날. 복잡한 객차 속,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구부정한 어깨의 노인이 있었다.나는 그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저렇게 늙지 않을 거야.” “나는 나이 들어도 더 씩씩할 거야.” “나는 저 자리에 앉지 않을 거야.”그때 나는 그 노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청년의 눈으로 본 노인그 시절의 나는 세상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줄 알았다. 뒤로 물러난다는 건 패배였고, 느려지는 건 게으름이었다.노인의 구부러진 허리, 무표정한 얼굴, 움직이지 않는 손. 그 모든 것이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그는 나의 미래가 아니라 그저 ‘과거의 잔상’처럼 보였던.. 2025. 8. 31.
노약자석-그 자리에 앉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노약자석 – 앉음 뒤에 숨어 있는 오랜 여정지하철 노약자석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그 자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앉기까지, 단순히 '나이'만 지난 건 아니다.몸이 불편해지는 데 걸린 시간, 마음을 내려놓는 데 걸린 시간, 그리고 그 자리에 스스로를 앉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계절을 지나야 했는지 모른다.젊었을 때의 나는, 절대 이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생각했다스무 살의 나는 노약자석을 볼 때마다 “나는 저기 앉을 일 없겠지”라고 속으로 되뇌곤 했다. 그 자리에 앉는다는 건 자신이 늙었다는 걸 인정하는 일 같았다.나는, 늘 빠르게 움직이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고 양보할 수 있는 쪽이길 원했다.그러나 나이를 먹는 건, 생각보다 빠르고 느리다어느 날부터인가 허리통증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2025. 8. 30.
지하철 노약자석-말없이 앉아 있는 이들을 위한 자리 지하철 노약자석 – 침묵 속에 담긴 무게지하철을 탈 때면 가장 조용한 구역은 언제나 노약자석이다. 그곳엔 유난히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지도 않고, 눈으로 스마트폰을 뒤적이지도 않는다.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 말이 없지만, 생각은 누구보다 무겁고 오래 이어진다.침묵은 이야기의 반대말이 아니다누군가는 침묵을 무심함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침묵은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태도다.그들은 이미 할 말을 다 했다. 인생의 긴 시간을 통해 수많은 말과 감정들을 흘려보냈고, 이젠 말이 아닌 생각으로 세상을 대한다.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무게나는 노약자석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볼 때 묘한 존경심을 느낀다. 특별한 대단함이.. 2025. 8. 29.
노약자석에서 바라본 인생-빈자리보다 무거운 자리 노약자석에서 마주한 나이와 삶의 무게빈자리보다 무거운 자리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은 자리를 찾는다. 서 있기보단 앉는 게 낫고, 앉는 것보단 편안한 자리가 좋다. 그런 면에서 노약자석은 특이한 자리다. 비어 있어도 쉽게 앉을 수 없고, 앉아 있어도 마음이 가볍지 않다.그 자리는, 사실은 ‘가장 무거운 자리’다. 단지 앉는 것 이상의 의미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비어 있는 것 같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다한 번쯤은 다들 봤을 것이다. 노약자석이 한 자리 비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그 앞에 서서도 앉지 않는 풍경. 그 자리는 겉으로는 ‘비어’ 있지만 속으로는 이미 가득 차 있다.누군가의 아픔, 누군가의 세월, 그리고 누군가의 마지막 이동 경로. 그런 것들이 그 자리 위에 쌓여 있다.나는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 2025. 8. 28.
노약자석-젊은 사람들은 그 자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노약자석-외면당한 자리, 그러나 늘 채워지는 곳지하철에서 가장 조용한 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단연코 ‘노약자석’이라 말하겠다.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누구도 오래 시선을 두지 않는, 조용하고 낯선 침묵의 공간.요즘 들어 더 자주 느낀다. 젊은 사람들은 이 자리를 거의 보지 않는다. 마치 투명한 벽이 있는 듯, 이 자리 앞을 그냥 스쳐 지나간다.몸은 가까워도, 마음은 멀다지하철 객차 하나 안에 모두가 타고 있지만 노약자석과 일반석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젊은 이들은 그 간극을 본능적으로 피한다. 그 자리를 보면 죄책감이 들기 때문일까? 혹은 그 자리를 본다는 건 ‘늙음’과 ‘쇠약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일까.어쩌면 그들은 그저 보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그 자리 앞에선, 고개를 .. 2025. 8. 27.
지하철 창에 비친 얼굴, 낯선 내 모습 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지하철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날 때면 창이 거울이 된다. 나는 종종 그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무의식적으로, 습관처럼. 그러나 그 순간마다 나는 짧은 충격을 받는다.“저게… 나인가?” “이게… 지금의 내 얼굴인가?”병에 걸리기 전, 나는 종종 ‘자신감’이라는 걸 얼굴 위에 걸치고 살았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복장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피부는 조금 더 거칠어졌고, 눈 밑의 그늘은 지워지지 않는다.치료가 바꿔놓은 것들항암 치료는 내 몸을 정직하게 바꿨다. 머리카락, 체중, 눈빛, 그리고 ‘표정’이라는 것을 더 이상 조율하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지금의 내 얼굴을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야 하는 중이다.창에 비친 얼굴은 내가 아는 누군가 같기도 하.. 2025. 8. 26.
노약자석 - 그 자리에 처음 앉았을 때 노약자석에 처음 앉던 순간의 낯섦지하철 노약자석.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는 내게 ‘금기’였다. 비어 있어도, 발이 아파도, 허리가 욱신거려도 나는 절대로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앉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는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비워둬야 하는 곳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비가 내리던 늦봄의 오후.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던 길이었다. 발목은 아침부터 욱신거렸고, 오른쪽 무릎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조용히 울렸다. 평소 같았으면 참고 일반석에 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노약자석 쪽 좌석 하나가 조용히 비어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멈췄다. 머뭇거렸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다.그리고 나는 앉았다.. 2025.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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