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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 여정-임당역에서 강창역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암 치료의 여정 – 임당역에서 강창역까지임당역, 아직 시작되지 않은 하루의 입구이른 아침, 임당역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묵직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루를 시작하는 평범한 장소일 테지만 나에겐 이곳이 오늘을 살아낼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감정의 문턱이 된다.아직 햇살이 지하로 닿지 않은 시간. 회색빛 벽, 눅눅한 공기, 그리고 아직 말이 오가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 모든 게 느리고 조용하다. 마치 나의 폐처럼, 깊게 들이켜야만 겨우 살아 있는 것처럼.“완전관해”라는 말의 무게의사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건 마치 먼 별자리 같았다. 너무 멀고, 너무 빛나서 가까이 갈수록 눈이 아픈 그런 말.완전관해. 모든 병변이 사라지고 당장은 이상 소견이 없다는 그 단어는 희망 같기도, 허상 같기도 했다... 2025. 8. 25.
노약자석-앉아 있어도 불편한 자리 편히 앉았는데도 쉬어지지 않는 자리노약자석에 앉아 있다는 건 편안함 속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의미다. 몸은 분명히 앉기를 원한다. 무릎도, 허리도, 이젠 오래 서 있기를 거부한다.하지만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 자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정신적 권한을 나는 여전히 얻지 못했다.처음으로 '내가 앉아도 되는 자리'라는 걸 알았을 때어느 날, 병원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 가방은 어깨에 묵직했고, 다리는 약간 휘청거렸다. 노약자석 하나가 비어 있었다.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몸은 편안함을 느꼈지만 시선은 자연스럽게 바닥을 향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할까봐.내가 앉아 있어도 되는 자리가 되었는데도 왜 이리 눈치가 보였을까.내가 앉아 있으면, 누가 나를 .. 2025. 8. 25.
‘노약자’라는 단어가 나를 향할 때 그 말이 내 이름처럼 들리던 순간, ‘노약자’노약자. 그 단어는 오랫동안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였다. 기차역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노약자 우선’이라는 안내문을 봐도 그저 다른 누군가의 몫이라 여겼다.지하철 노약자석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는 늘 내가 비켜줘야 할 자리였고, 내가 지켜야 할 예의였다.그런데 어느 날, 그 단어가 조용히 나를 향했다. 아무도 직접 말하지 않았고, 어떤 경고도 없었지만 나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몸은 먼저 알고 있었다숨이 차오르는 속도가 빨라졌고 아침 기상 후 허리 근육이 뻣뻣해졌다. 무거운 가방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지고 계단보다 에스컬레이터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병원 대기실에서는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연령상, 관절염이 자연스러운 시기입니다.” 그 말 한마디가 전조였다.. 2025. 8. 24.
비어 있는 자리는 늘 비어 있지 않았다. 빈자리가 남긴 시간의 흔적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노약자석이 비어 있길래 앉았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형식적으로, 물리적으로, 실제로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처음 앉던 날 그 빈자리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을 느꼈다. 비어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비어 있지 않은 자리. 그곳은 누군가의 숨결이, 누군가의 쉼표가, 누군가의 마지막이 스며든 곳이었다.빈 자리에 남은 것들처음으로 노약자석에 앉고 나서야 나는 그 자리가 단순한 ‘의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등받이에 살짝 눌린 형상, 천 위에 묻은 시간의 먼지, 때로는 묻어나 있는 약 냄새. 그 자리는 그저 누군가 앉았다가 떠난 자리가 아니었다. 그 자리를 스쳐간 수많은 사람의 인생이 보이지 않게 눌어 있었다.지하철은 달리고, 사람들.. 2025. 8. 23.
노약자석에 처음 앉던 날 노약자석에 앉던 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지하철 노약자석. 늘 그 자리는 ‘남의 자리’였다. 내가 앉아서는 안 되는 자리, 앉지 말아야 한다고 배운 자리였다.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가 비어 있어도 나는 절대 거기에 앉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눈길을 주는 것조차 어떤 금기를 깨는 듯한 기분이었다.그날,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시간을 피한 낮 시간. 지하철은 비교적 한산했고, 노약자석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나는 평소처럼 맨 끝칸으로 향했다. 자리가 모두 차 있었고, 그 붉은색 천으로 덮인 네 칸이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허리가 아팠다. 무릎도 시큰거렸다. 무릎 위에 들고 있던 가방도 무겁게 느껴졌다.나는 조심스럽게 그 붉은 좌석에 앉았다... 2025. 8. 22.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 그 위에 앉은 나 되풀이되는 일상 속 멈춰 선 그림자지하철이 멈추고, 사람이 내리고, 다시 사람이 탄다. 출근, 점심, 퇴근, 야근, 그 모든 단어들이 반복된다. 그리고 나는 그 위에, 오늘도 앉아 있다.어제와 다르지 않은 노선, 익숙한 칸, 그 안의 낯선 표정들. 하지만 이 도시의 대부분은 그 낯섦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견디는 사람들눈을 뜨고, 출근하고, 일하고, 집에 가고, 자는 것까지도 반복. 그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 되어버렸다.지하철은 그 반복을 잇는 연결선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하루의 시작과 끝, 그 중심.한 칸 안에 들어찬 ‘지나간 감정들’지하철 한 칸 안에는 수많은 하루가 담겨 있다. 방금 면접을 본 사람, 이별을 겪은 사람, 막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 2025. 8. 21.
멍하니 창밖을 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시간 멍함 속에서만 허락되는 짧은 휴식멍하니 창밖을 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시간지하철이 터널을 빠르게 달린다. 창밖엔 검은 벽이 스치듯 지나간다. 간혹 스쳐 지나가는 광고판, 빛이 번지는 조명, 그러다 다시 어둠.그 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창을 ‘보는’ 게 아니라, 그저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다.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다는 감각우리는 자주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있었어.” 하지만 진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뇌가 비워진다기보다, 그저 작동을 멈추는 듯한 상태.그건 평온이 아니다. 멍함이자 공백, 움직이되 정지된 감정의 상태. 무력감은 그렇게 조용히 온다.그럴 때, 사람들은 창밖을 본다정면을 보기엔 버겁고, 고개를 떨구자니 숨이 막힌다. 그래서 창밖을 향한.. 2025. 8. 20.
지하철 광고 속 삶과 현실 사이의 거리 광고 속 미소와 현실의 무표정 사이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다 보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벽면을 빼곡히 채운 광고들이다.“당신도 바뀔 수 있습니다” “월 1,000만 원, 쉽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선택” 이런 문구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의 눈에 들어온다.눈을 어디에도 둘 수 없을 때, 광고를 본다지하철은 좁고, 사람은 많고, 무언가를 뚫어져라 보는 게 조심스러운 공간이다. 그래서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사람들은 광고를 본다.문구 하나하나를 읽지는 않아도 이미지는 남는다. 깔끔한 정장, 웃는 얼굴, 넉넉한 여유, 그런 것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새겨진다.광고는 꿈을 팔고, 현실은 침묵한다광고는 언제나 희망을 말한다. 더 나은 삶, 더 많은 돈, 더 확실한 선택. 그런데 그 .. 2025. 8. 19.
말없이 흐느끼는 사람 곁에서 흐느낌을 지켜보는 나의 침묵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순간 공기는 다르게 흐른다. 모두가 모른 척하지만, 누구도 그 장면을 완전히 외면하지 못한다.도시는 무표정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그 좁은 칸 안에서 흐느끼는 한 사람을 마주한 우리는 그 누구보다 많은 감정을 동시에 겪는다.울음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지하철에서 우는 사람은 대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입을 꾹 다물고, 눈물만 흐른다. 손등으로 닦거나, 모자나 머리카락으로 가린다. 그 울음은 아주 조용하지만, 칸 전체를 잠식한다.옆자리 사람도, 마주 앉은 사람도 그 사실을 모를 수 없다. 우리는 소리가 아니라 ‘기운’을 느낀다. 슬픔은 진동처럼 퍼져 나간다.무슨 일이 있었을까누군가는 연인을 잃었을지도 모르고,..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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