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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 중, 나는 왜 다시 병원을 찾았을까? 왜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아야 했을까? 암과의 여정 속에서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항암제 마지막 스케줄도 마무리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다 나은 거냐”고 묻지만, 나는 속으로 자꾸 되물었다. “이게 끝일까?”, “내 몸은 정말 괜찮은 걸까?”치료가 끝난 자리엔 회복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피로는 늘어났고, 체온은 자주 요동쳤으며, 작은 감기에도 몸이 휘청거렸다.그러다 보니 어느새, ‘완전관해’라는 단어가 간절해졌다. 단순히 증상이 없다는 게 아니라, 내 몸속 깊이 숨어 있는 불씨까지 꺼버리고 싶었다.몸이 먼저 반응했다병이 사라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 몸은 여전히 경계 상태에 있었다. 하루를 버티는 것도 벅찼다. 체력은 바닥이었고, 감정도 자주 가라앉았다.그때부터 ‘면역력’이라는 단어가 점.. 2025. 9. 18.
완전관해를 꿈꾸며: 다시 병원 문을 두드리다 완전관해를 꿈꾸는 환자의 또 다른 여정암 치료를 마쳤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다.나는 생존자다. 의사에게 ‘관해’라는 말을 들었고, 사람들은 “이제 괜찮겠네”라고 말했지만 내 안에서는 계속해서 질문이 일었다.“정말 괜찮은 걸까?”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이대로 멈춰 있어도 되는 걸까?”완전관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완전관해’라는 말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공포였다. 그 단어는 멀게 느껴졌고, 나는 여전히 불안한 체온 속에 있었다.그래서 결심했다. 치료 이후의 삶도 내가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단지 재발을 기다리며 지낼 수는 없었다.무너지지 않기 위해, 다시 요양병원을 찾다나는 검색을 시작했고, 다시 병원이라는 두 글자 앞에 섰다. 하지만 .. 2025. 9. 15.
내일도,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내일도 걸을 수 있다는 작은 기도지하철 임당역의 계단을 오른다. 오늘도 무사히 병원에서 돌아왔다. 몸은 여전히 무겁고, 가끔은 발끝부터 쑤시듯 피로가 올라온다.하지만 지금 나는, 다시 일어섰다. 오늘 하루를 버텼고, 이제는 집으로 가는 길이다.지하철은 매일 같지만, 내 마음은 다르다임당에서 강창까지, 이 익숙한 3정거장은 이제 나에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기대감, 두려움, 안도, 지침, 위로. 그 모든 감정이 하루 동안 이 선로 위에서 일어난다.그리고 매일매일, 이 정해진 길을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씩 회복되어 간다.다음 날을 바란다는 것은 용기다내일도 이 길을 걷고 싶다. 비가 오든, 몸이 아프든, 나는 다시 임당역으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그리고 강창역까지 천천히라도,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 2025. 9. 14.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 오늘은 왜 이리 아름답지 왜일까, 오늘은 창밖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강창에서 임당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객차 유리창 너머 풍경이 오늘은 유독 선명해 보였다.하늘은 맑고, 구름은 얇은 솜처럼 가볍게 떠 있었고, 도로 위로는 출근길의 분주함이 빠져 나른하고 평화로운 정오의 공기가 그림처럼 퍼져 있었다.암을 겪기 전엔 몰랐던 아름다움병을 진단받기 전, 나는 늘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창밖을 지나쳤다. 풍경은 배경음악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고,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목적지뿐이었다.하지만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멈출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특히 ‘창밖’이라는 이 좁은 세계 안에서.창 밖 풍경에 가슴이 미어지는 날어느 날은 창밖의 나무 한 그루에 눈이 멎는다. 잎이 흔들리는 작은 떨림이 내 몸속의 불안과 묘하.. 2025. 9. 13.
지하철의 노약자석, 이제는 내 자리 지하철 노약자석, 청춘에서 노년으로 이어진 의자한때 나는 노약자석 앞에 서는 것조차 어색했다. 빈자리가 나를 유혹해도 그곳에 앉는 건 예의가 아니라 여겼다.그 자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몫이었다. 늙은 어르신, 지팡이를 짚은 사람, 혹은 임산부.하지만 이제, 그 빈자리에 내 몸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처음 그 자리에 앉았던 날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어지럼증이 심했던 날, 나는 결국 노약자석에 주저앉았다.주변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속으로 물어보는 것 같았다. “젊은 사람이 왜 저기 앉아?”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깨달았다. 그 자리는 배려의 공간이자 필요의 공간이라는 것을.노약자석은 ‘약함을 수용하는 용기’의 자리다노약자석에 앉는다는 건 약자라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약함을 드러낸다는 건 어.. 2025. 9. 12.
암 치료의 여정 -버텨낸 하루의 증명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강창역 플랫폼에 다시 섰다. 진료를 마친 오후, 몸은 천근처럼 무겁다. 그러나 마음 어딘가에는 묵직한 만족감이 말없이 눌러앉아 있다.오늘도 다녀왔다는 사실, 다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작지만 분명한 승리다.나를 증명해주는 건 결과지가 아니라 이 귀갓길이다의사 앞에서 받은 혈액검사 결과지보다 지금 이 열차 안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명확하게 오늘을 버텨냈다는 걸 증명한다.숫자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몸에 스민 피로감, 앉자마자 느껴지는 안도의 한숨, 손끝의 묵직한 탈력감은 분명히 ‘살아낸 자의 감각’이다.지친 몸을 맡긴 객차 안, 이곳이 내 쉼터다사람들 틈에 조용히 앉아 나는 등을 기댄다. 마치 객차 전체가 내 몸을 감싸주는 듯하다... 2025. 9. 4.
암 치료 여정-내가 오늘도 살아 있다는 증거들 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 임당역에서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 나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쉰다. 그건 피곤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나만의 방식이다.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그 단순한 동작이 오늘도 나를 이 세계에 붙들어 놓는다. 숨결 하나로 확인하는 생존병을 앓고 나니 숨쉬는 일조차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항암 치료가 끝난 날도, 그 후 며칠 동안 폐가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가끔은 침대에 누운 채 ‘지금 숨 쉬고 있나?’라는 생각에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하지만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내 숨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미소 짓는다. ‘그래, 오늘도 살아 있다.’소리와 소음 사이의 자각지하철 안은 시끄럽다. 전동차의 덜컹거리는 소리, 지직거리는 안내방송, 핸드폰.. 2025. 9. 3.
암 치료 여정-다시 ‘강창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 임당에서 강창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다시 ‘강창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지하철 문이 ‘강창역입니다’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열릴 때,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오늘도 도착했다.” 임당에서 강창까지 그 구간은 나에게 하루의 생존곡선이었다.어떤 날은 숨이 가빴고, 어떤 날은 생각이 무겁고, 또 어떤 날은 가슴이 멍하니 무감각했다. 그 모든 감정을 통과해 ‘강창역’이라는 간판 앞에 선 순간, 나는 확신한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도착했다’는 말은 단순한 이동을 뜻하지 않는다사람들은 말한다. “지하철 타고 몇 정거장이면 도착한다”고. 하지만 나에게 도착은 단순히 장소에 이른다는 의미가 아니다.그건 오늘 하루 몸이 허락한 거리였다는 뜻이고, 마음이 허락한 출발이었다는 의미다.어떤 날은 몸이 말을 .. 2025. 9. 3.
암 치료 여정-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임당역에서 강창역까지, 완전관해를 꿈꾸며나는 요즘 지하철 좌석에 앉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이른 아침, 임당역에서 출발해 강창역까지 가는 길....여러 정거장을 지나치면서 어쩐지 좌석 하나에 앉게 되면 오늘은 살아 숨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어제는 한 노년의 남자와 오늘은 한 학생과 그리고 또 다른 날은 말 없는 중년 부부와 내 몸의 몇 센티를 나란히 했다.그들은 나를 모른다, 나는 그들을 안다그들은 내가 병을 앓고 있다는 걸 모른다. 완전관해를 꿈꾸며 이 지하철에 오르는 이유도, 며칠째 잠을 못 잔 얼굴이라는 것도, 어쩌면 오늘 아플까 봐 긴장하고 있다는 것도.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의 피곤한 눈동자에서 그들도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그 누구도 가볍게 이 도시를 지나가는 사람은 .. 2025.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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